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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성 가정

박용화
2019-12-30
조회수 1191

성 가정(聖 家庭)

판공 성사 때만 되면 항상 성 가정을 이루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참회하며 신부님에게 고백하면서 이의 해결책을 소원하곤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가정의 모델은 요셉, 마리아, 예수의 가정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도 처음부터 지극한 사랑으로 맺어진 성 가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마리아는 천사의 뜻하지 않은 계시로 앞으로의 잉태를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 라는 표현으로 그때 당시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돌로 쳐죽임을 당함을 알면서도 주님께 순명하여 받아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아닌 밤중의 홍두께격으로 잉태를 하였다고 하니 요셉으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태에까지 이르러 내심 파혼하려고 하던 차에 꿈에 나타난 천사의 계시로 드디어는, 그전부터 하느님에게로 향한 의탁의 삶을 의롭게 살고 있었던 요셉은 용서와 사랑으로써 받아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드디어는 서로 존경, 사려 깊은 동정심, 겸손과 온유, 인내와 용서 그리고 사랑으로써 하느님 섭리에 의한 역사 하심에 순종하면서 성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렇듯 성가정의 모습은 계속 이어집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헤로데 왕의 피살 소문을 듣고는 이집트까지 피신했으며 그를 극진히 사랑하고 아꼈습니다(마태2,13-23). 그렇지만 어머니도 예수를 잃어버려 사흘을 찾아 헤매다가 성전에서 찾고서는 얘야, 우리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 보아라, 네 아버지와 내가 애타게 너를 찾았단다(루가2,48)라고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에 어린 예수님은 제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루가2,49)라고 응답하면서 당신의 세속에서의 역할을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모든 일을 마음에 새겨 두었으며 곰곰이 생각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을 찾습니다(루가2,19). 그 후 예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냅니다(루가2,51). 이 얼마나 갸륵하고 올바른 믿음입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거의 대부분 요셉과 같은 의문스러운 긴박감도 겪지도 않고 게름직한 상황도 아닌 상태에서, 연애이든 중매이든 간에 수많은 세월 동안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다가 혼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 대부분은 성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고백 성사 감으로 신부님에게 매달려야 합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록 사랑으로 맺은 혼인일지라도 서로 늘 불만이 많고 현실에 대한 책임과 성실보다는 현실을 떠나서 자유스럽게 즐기려는 성향 때문에 가족 구성원이 서로 유대가 굳게 맺어지지 못하고 따로따로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족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여건이 좋아지고 있어도 가정적으로 오히려 갈등만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이고 많아 보여서 불만과 불행을 더 느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또한 나자렛의 성가정과도 크게 비교가 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다섯 가지 덕목으로 짜여진 옷을 비유로 말씀하였습니다. 다섯 가지 덕목은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 그리고 인내입니다. 옷이란 그 기능에 있어서 첫째로 몸을 따뜻하게 유지시켜 주는 대내적인 것과, 둘째로 자기의 표현 수단이요 다른 사람과 이루는 소통의 수단인 대외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 덕들은 다른 사람을 지향한 덕목들이며 새로운 신분에 따라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이루는 소통의 방편입니다. 그래서 무릇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들 다섯 덕목으로 짜인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이고 필수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바오로는 이어서 '용서와 사랑'으로 치장한 새로운 옷을 입으라고 강조하였습니다(골로4,12-15 참조). 이들 새로운 옷을 입으므로 써 대내적으로 따뜻하고 대외적으로 서로 소통할 수가 있으며, 그리스도적이 되어 요셉이 이룩한 성 가정을 본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서로의 소임에 충실하고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이를 극복하면서 남편은 요셉처럼, 아내는 마리아처럼, 자녀들은 예수님처럼 살도록 노력하면 우리가 꿈에도 바라던 성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완전히 하나이신 분인 삼위 일체의 하느님을 따르는 우리의 절대 절명의 태도가 될 것입니다. 199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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